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바흐에서 라이네케까지, 라이프치히와 나누는 음악의 대화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광장, 오래된 교회, 강을 따라 이어지는 거리들. 유럽의 클래식 음악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따라 이어지고 울리며 종종 한 도시의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일이 아니라 한 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함께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알프스 자락의 잘츠부르크에서는 모차르트가 태어났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지는 그곳의 풍경 속에서 그의 음악은 밝고 유연한 균형을 지닌 고전주의의 언어로 완성되었다. 프라하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처럼 보헤미아의 역사와 민족의 기억을 옮겨 놓은 음악들로 기억된다. 유럽에서 그 음악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다. 위대한 작곡가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음악적 전통이 층층이 쌓여 형성된 도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교회와 학교, 출판과 공연이 서로 연결되며 음악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 18세기에는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칸타타와 종교음악을 작곡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다시 세상에 알렸고, 라이프치히 음악원과 공연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기에 오랜 역사를 지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와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이 더해지면서 라이프치히는 유럽 음악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에서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동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는 건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그곳의 음악적 공기와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언어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계승을 보여준 레퍼토리들
이번 연주는 바흐의 <시온은 파수꾼의 소리를 듣고>로 문을 열었다. 바흐에게 라이프치히는 창작의 정점이자, 음악이 신앙과 공동체 속에서 기능하던 공간이었다.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활동하며 완성한 음악은 이후 모든 독일 음악 전통의 기초로 작용한다. 이 도시에서 바흐의 음악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기원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연주회의 문을 이 곡으로 연 것은 단순한 레퍼토리 선택을 넘어, 하나의 출발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행위이다. 바흐 이후 이어지는 낭만주의 음악과 깊은 개인의 감정을 담은 음악들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이 곡은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즉, 이 곡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적 층위, 즉 신앙과 구조, 그리고 공동체적 울림의 세계를 먼저 호출함으로써 이후의 모든 음악을 그 위에 놓겠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다.
다음 곡을 멘델스존의 <무언가>로 이은 것도 의미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를 다시 호출한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키며 잊혔던 음악을 현재로 되돌려 놓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고전적 균형과 낭만적 서정이 그의 음악 안에서 공존한다. 이번 연주에서 들려준 <무언가>는 말 그대로 ‘가사 없는 노래’로, 언어 없이 선율과 정서를 피아노로 구현한 작품들로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Op.109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선율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감정과 사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Op.62 No.2는 보다 명확한 선율성과 부드러운 흐름을 지닌 곡이다. 이 두 작품을 함께 들으면서 멘델스존의 <무언가>가 지닌 두 가지 얼굴, 외면의 우아한 노래와 내면의 조용한 사유를 우리는 함께 느낄 수 있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에게도 라이프치히는 단순한 활동 무대를 넘어, 음악적 사유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지적 공간이었다. 특히 클라라는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라이프치히 음악 문화의 지속성을 상징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보통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자리를 통해 클라라 슈만의 음악을 듣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특히 이번 공연의 해설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음악이 곧 한 편의 러브레터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로베르트 슈만의 <헌정>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 열정적인 환희를 담은 작품으로 음악을 듣는 동안 마치 관객 자신이 누군가에서 고백을 받은 것 같은 환영에 휩싸이게 만드는 곡이기도 하다.
한편 라이네케는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전통을 제도적으로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혁신보다는 고전적 형식과 낭만적 어법을 안정적으로 결합해서 19세기 후반의 음악 문화를 정리했다. 이번 연주에서 들려준 <피아노, 오보에, 호른을 위한 삼중주>는 악기 편성에서부터 흔하지 않은 조합의 곡으로 각 악기의 개성과 매력이 균형 있게 드러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피아노가 구조와 화성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가운데, 오보에는 맑고 선명한 선율을, 호른은 깊고 부드러운 울림을 더하며 각 악기가 대등한 파트너로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점이 특징이다. 절제와 조화, 계승이라는 라이프치히 음악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는 곡이기도 하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끝으로 호른 연주자 이세르게이가 애정을 갖고 있는 곡이라고 밝히며 연주한 로베르트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Op.70>는 호른과 피아노를 위해 쓰인 흔치 않은 작품으로, 부드러운 아다지오와 활기찬 알레그로의 에너지라는 상반된 성격의 정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정과 열정, 내면과 외면의 대비가 농축된 이 곡은 슈만 특유의 감정의 진폭이 낭만적으로 잘 버무려진 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바흐에서 시작해 멘델스존, 슈만 부부, 그리고 라이네케로 이어지는 흐름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만들어온 음악적 시간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이 연주회가 만든 하나의 음악적 지형을 짚어가는 것은 라이프치히의 예술적 면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왜 피아노, 호른, 오보에인가
이번 연주에서 피아노, 호른, 오보에라는 악기 편성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오케스트라는 크게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의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중심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현악기가 자리하며, 이들은 전체 음악의 밀도와 음향의 기반을 만들어낸다. 그 위에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 목관악기와 호른, 트럼펫, 트롬본 등 금관악기가 입체감을 더하고, 타악기는 리듬을 통해 음악의 맛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런 악기의 현대식 배치에서는 바이올린이 왼쪽에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소리가 하나로 뭉쳐서 넓고 풍성한 덩어리처럼 들린다. 반면에 독일식 배치에서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누어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연주하는 구조다. 그래서 한쪽에서 나온 선율이 반대편에서 응답하는 식으로 들리게 된다. 이런 독일식 배치는 바흐의 음악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번 연주는 현악기인 피아노, 금관악기 호른, 목관악기 오보에를 통해서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응축해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소극장에서 이뤄진 이 공연은 누군가의 거실이나 응접실에서 연주되는 실내악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특히 라이프치히의 음악 전통 속에서 실내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도시는 교회 음악에서 출발해 교회나 콘서트홀 같은 공적 공간의 음악과 가정과 살롱에서 이뤄지는 사적 공간의 음악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실내악 편성이 발전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온 러브레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번 연주회도 그때 그 도시의 분위기를 양평으로 가져오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작은 규모의 음악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는 다른 친밀한 음악 세계를 전한다. 특히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나 현악 중심의 실내악에서 벗어나, 관악기의 음색을 전면에 드러낸 이 구성 자체가 아주 독특하다. 현악기와 금관악기, 목관악기의 음색 사이로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또 하나의 악기, 타악기가 되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음악의 기억 안에서 다른 하나의 계절이 시작된다
라이프치히의 음악은 한 사람의 작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에서 시작된 소리와 공연장에서 이어진 전통,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진 음악가들의 기억이 함께 만든 하나의 풍경이다. 바흐에서 시작된 음악적 질서와 구조, 멘델스존을 거쳐 확장된 낭만적 감수성, 슈만 부부를 통해 깊어진 내면의 언어, 라이네케에 이르러 다시 정리된 하나의 전통. 이 연주회는 단순한 작품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가 품고 있는 음악적 시간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것은 하나의 계절이 끝났다는 것보다 다른 하나의 계절이 시작한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시간 속에서 음악이 그렇듯이.
| 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 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바흐에서 라이네케까지, 라이프치히와 나누는 음악의 대화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광장, 오래된 교회, 강을 따라 이어지는 거리들. 유럽의 클래식 음악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따라 이어지고 울리며 종종 한 도시의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일이 아니라 한 도시의 시간과 기억을 함께 만나는 경험이기도 하다. 알프스 자락의 잘츠부르크에서는 모차르트가 태어났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지는 그곳의 풍경 속에서 그의 음악은 밝고 유연한 균형을 지닌 고전주의의 언어로 완성되었다. 프라하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처럼 보헤미아의 역사와 민족의 기억을 옮겨 놓은 음악들로 기억된다. 유럽에서 그 음악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된다.
독일의 라이프치히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다. 위대한 작곡가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음악적 전통이 층층이 쌓여 형성된 도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교회와 학교, 출판과 공연이 서로 연결되며 음악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다. 18세기에는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칸타타와 종교음악을 작곡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멘델스존이 바흐의 음악을 다시 세상에 알렸고, 라이프치히 음악원과 공연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기에 오랜 역사를 지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와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이 더해지면서 라이프치히는 유럽 음악사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에서 라이프치히를 기반으로 활동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는 건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그곳의 음악적 공기와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언어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계승을 보여준 레퍼토리들
이번 연주는 바흐의 <시온은 파수꾼의 소리를 듣고>로 문을 열었다. 바흐에게 라이프치히는 창작의 정점이자, 음악이 신앙과 공동체 속에서 기능하던 공간이었다.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에서 활동하며 완성한 음악은 이후 모든 독일 음악 전통의 기초로 작용한다. 이 도시에서 바흐의 음악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기원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연주회의 문을 이 곡으로 연 것은 단순한 레퍼토리 선택을 넘어, 하나의 출발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행위이다. 바흐 이후 이어지는 낭만주의 음악과 깊은 개인의 감정을 담은 음악들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이 곡은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즉, 이 곡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적 층위, 즉 신앙과 구조, 그리고 공동체적 울림의 세계를 먼저 호출함으로써 이후의 모든 음악을 그 위에 놓겠다는 선언이 되는 것이다.
다음 곡을 멘델스존의 <무언가>로 이은 것도 의미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를 다시 호출한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키며 잊혔던 음악을 현재로 되돌려 놓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고전적 균형과 낭만적 서정이 그의 음악 안에서 공존한다. 이번 연주에서 들려준 <무언가>는 말 그대로 ‘가사 없는 노래’로, 언어 없이 선율과 정서를 피아노로 구현한 작품들로 이런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Op.109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선율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감정과 사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Op.62 No.2는 보다 명확한 선율성과 부드러운 흐름을 지닌 곡이다. 이 두 작품을 함께 들으면서 멘델스존의 <무언가>가 지닌 두 가지 얼굴, 외면의 우아한 노래와 내면의 조용한 사유를 우리는 함께 느낄 수 있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에게도 라이프치히는 단순한 활동 무대를 넘어, 음악적 사유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지적 공간이었다. 특히 클라라는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라이프치히 음악 문화의 지속성을 상징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보통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자리를 통해 클라라 슈만의 음악을 듣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특히 이번 공연의 해설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는 관객에게 음악이 곧 한 편의 러브레터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로베르트 슈만의 <헌정>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 열정적인 환희를 담은 작품으로 음악을 듣는 동안 마치 관객 자신이 누군가에서 고백을 받은 것 같은 환영에 휩싸이게 만드는 곡이기도 하다.
한편 라이네케는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전통을 제도적으로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혁신보다는 고전적 형식과 낭만적 어법을 안정적으로 결합해서 19세기 후반의 음악 문화를 정리했다. 이번 연주에서 들려준 <피아노, 오보에, 호른을 위한 삼중주>는 악기 편성에서부터 흔하지 않은 조합의 곡으로 각 악기의 개성과 매력이 균형 있게 드러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피아노가 구조와 화성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가운데, 오보에는 맑고 선명한 선율을, 호른은 깊고 부드러운 울림을 더하며 각 악기가 대등한 파트너로서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점이 특징이다. 절제와 조화, 계승이라는 라이프치히 음악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는 곡이기도 하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끝으로 호른 연주자 이세르게이가 애정을 갖고 있는 곡이라고 밝히며 연주한 로베르트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Op.70>는 호른과 피아노를 위해 쓰인 흔치 않은 작품으로, 부드러운 아다지오와 활기찬 알레그로의 에너지라는 상반된 성격의 정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서정과 열정, 내면과 외면의 대비가 농축된 이 곡은 슈만 특유의 감정의 진폭이 낭만적으로 잘 버무려진 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바흐에서 시작해 멘델스존, 슈만 부부, 그리고 라이네케로 이어지는 흐름은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만들어온 음악적 시간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이 연주회가 만든 하나의 음악적 지형을 짚어가는 것은 라이프치히의 예술적 면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왜 피아노, 호른, 오보에인가
이번 연주에서 피아노, 호른, 오보에라는 악기 편성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오케스트라는 크게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의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중심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현악기가 자리하며, 이들은 전체 음악의 밀도와 음향의 기반을 만들어낸다. 그 위에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 목관악기와 호른, 트럼펫, 트롬본 등 금관악기가 입체감을 더하고, 타악기는 리듬을 통해 음악의 맛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런 악기의 현대식 배치에서는 바이올린이 왼쪽에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소리가 하나로 뭉쳐서 넓고 풍성한 덩어리처럼 들린다. 반면에 독일식 배치에서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누어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연주하는 구조다. 그래서 한쪽에서 나온 선율이 반대편에서 응답하는 식으로 들리게 된다. 이런 독일식 배치는 바흐의 음악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번 연주는 현악기인 피아노, 금관악기 호른, 목관악기 오보에를 통해서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응축해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소극장에서 이뤄진 이 공연은 누군가의 거실이나 응접실에서 연주되는 실내악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특히 라이프치히의 음악 전통 속에서 실내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도시는 교회 음악에서 출발해 교회나 콘서트홀 같은 공적 공간의 음악과 가정과 살롱에서 이뤄지는 사적 공간의 음악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실내악 편성이 발전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온 러브레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번 연주회도 그때 그 도시의 분위기를 양평으로 가져오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작은 규모의 음악은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는 다른 친밀한 음악 세계를 전한다. 특히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나 현악 중심의 실내악에서 벗어나, 관악기의 음색을 전면에 드러낸 이 구성 자체가 아주 독특하다. 현악기와 금관악기, 목관악기의 음색 사이로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또 하나의 악기, 타악기가 되었다.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2월 <라이프치히로부터 온 러브레터> Ⓒ 양평문화재단
음악의 기억 안에서 다른 하나의 계절이 시작된다
라이프치히의 음악은 한 사람의 작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에서 시작된 소리와 공연장에서 이어진 전통, 그리고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진 음악가들의 기억이 함께 만든 하나의 풍경이다. 바흐에서 시작된 음악적 질서와 구조, 멘델스존을 거쳐 확장된 낭만적 감수성, 슈만 부부를 통해 깊어진 내면의 언어, 라이네케에 이르러 다시 정리된 하나의 전통. 이 연주회는 단순한 작품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가 품고 있는 음악적 시간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것은 하나의 계절이 끝났다는 것보다 다른 하나의 계절이 시작한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시간 속에서 음악이 그렇듯이.
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 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 세종도서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