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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카시오페아무용단 <정심지무(靜心之舞)> 정, 흥, 얼, 혼, 전통춤으로 이은 우리

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카시오페아무용단 <정심지무(靜心之舞)>

정, 흥, 얼, 혼, 전통춤으로 이은 우리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정중동(靜中動). 흔히 우리나라 전통춤을 이야기할 때 정중동의 멋이 있다고 말한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는 뜻으로 결국 바깥에서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내면을 고요하게 다스릴 줄 아는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한다. 춤을 추는 사람은 몸을 그렇게 다룰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마음 또한 그렇게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도 포함한다. 관객의 박수가 있든 질타가 있든 상관없이 우직하게 진실되게 자신의 춤을 정진해나가는 것이다.

 

‘2026 별빛 물빛 콘서트 in 양평’ 올해의 첫 무대는 <정심지무(靜心之舞)>로 그 문을 열었다. 우리의 전통춤 7편으로 구성한 공연으로 정중동을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정심(靜心)은 고요한 마음을 뜻하는 말로 춤 안에서 정중동의 경지에 이르러 흔들림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을 동음이의어 ‘정(精)’으로 치환해서 바라보니 춤을 통해 우리만이 갖고 있는 속성을 읽게 된다. 이웃의 손에 슬쩍 밀어주는 귤 하나, 친구의 눈물에 쓱 건네주는 손수건 하나에 우리는 정(精)을 느낀다. 고요하지만 가장 강한 사랑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중동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 정심지무(靜心之舞)는 정심지무(精心之舞)가 되고, 춤은 춤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얼을 확인하는 통로가 된다.

 

대궐에서 듣고 추던 음악과 춤, 향악정재의 미

 

이번 <정심지무> 공연은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 7명이 모여 결성한 카시오페아무용단이 올렸다. 1951년에 개원한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을 공연하고 연구하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기관이다. 그 안에는 궁중음악을 계승하는 정악단, 판소리와 민요와 산조, 병창, 사물놀이 등 민속악에 주력하는 민속악단, 국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창작악단, 이렇게 세 개의 악단과 전통춤을 공연하고 연구하는 무용단이 함께 있다. 국립국악원의 무용단은 전통춤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곳 단원들의 춤을 본다는 건 우리 춤의 역사적 형태와 원형, 그 정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정심지무>에서 선보인 7편의 작품은 우리 춤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여서 더욱 그렇다.

 

전통춤은 크게 궁중무용과 민간에서 추던 민속무용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궁궐 안에서 잔치가 벌어질 때 선보이던 춤과 노래를 ‘정재(呈才)’라고 부른다. 이번 <정심지무>의 첫 무대는 궁중무용 중 하나인 ‘무산향(舞山香)’를 선보였다. 조선 시대 궁중음악의 중심축은 중국의 음악인 당악(唐樂)과 우리나라 고유음악인 향악(鄕樂)으로 나눠져 있는데 ‘무산향’은 향악에 맞춰 선보이는 우리 춤이다. 그래서 ‘향악정재’라고 부른다. 향악정재는 쉽게 말해 ‘우리의 궁중음악에 맞춰 추는 우리 춤’이라는 뜻으로 넓게 조선 시대 궁중에서 연회나 국가적 행사 때 음악과 춤을 결합해서 선보이는 종합예술을 가리킨다.


‘무산향’은 향악정재, 즉 궁중무용 중에서 흔치 않은 독무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장치 없이 춤 자체에만 집중해서 선보였지만 원래는 대모반(玳瑁盤)이라고 부르는 침상 위에서 추는 춤이다. 대모는 바다거북의 등껍질 무늬를 뜻하는 말로 무산향을 추는 대모반의 안쪽에 이 무늬가 새겨져 있어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거북이의 상징성이 그렇듯이 대모 무늬는 장수와 평화를 기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모반은 높이가 있는 단상이라 ‘무산향’은 그 높이에서 오는 고고한 미를 느낄 수 있는, 궁중무용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춤이다. 향악정재 독무 중에는 ‘춘앵전’이 ‘무산향’과 옷차림이나 춤사위가 비슷하지만 ‘춘앵전’은 단상이 아니라 돗자리 형태의 화문석(花紋席) 위에서 춤을 춘다. 화문석은 이름 그대로 꽃무늬가 그려진 자리를 뜻하기 때문에 조금 더 서정적인 미가 강하다는 점에서 ‘무산향’과 차이가 있다. 특히 ‘무산향’의 한자를 풀어보면 ‘산의 향기를 담은 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우리만의 정서를 담은 이름으로 느껴진다. 달리고 달려도 광활한 대지만 펼쳐지는 유럽이나 미주 지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더라도 늘 산이 동행하는 곳이다. 가끔씩 그 산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을 느낀다. 산과 정은 우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정겨운 이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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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월 카시오페아무용단 <정심지무(靜心之舞)>  Ⓒ 양평문화재단


이번 <정심지무> 공연에서 ‘무산향’은 유일한 향악정재였다. 세 번째로 선보인 ‘강선영류 태평무’의 경우 왕비가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기 위해 추는 춤이라 향악정재로 오인을 하기 쉬운데 궁중 의례에서 전승된 정재가 아니라, 20세기 초에 무대예술, 공연예술로 정립된 민속무용이다. 실제로 왕비가 추던 춤은 아니고 왕비의 복식을 입고 추는 춤이다. 이 춤은 왕과 왕비의 뜻과 기원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민속무용인만큼 궁중무용이 갖는 절제와 정제의 미보다는 생동감을 보여주는 춤이다. 몸을 굽혔다가 펴는 반복적인 탄력의 움직임인 굴신이 많고, 궁중무용의 미세한 발디딤과 달리 동적인 디딤이 강하다. 또 기원의 마음은 손에 낀 한삼을 통해 증폭시킨다. 한삼은 궁중 예복의 하나가 아니라 일종의 무용적 장치로 팔의 에너지를 길게 뻗어 보이게 하고, 굴신과 호흡의 파동을 시각화해서 춤을 생기있게 만든다. 즉, 태평무는 자신의 위치와 상황 때문에 미처 드러내지 못했을 왕비의 감정을 대신해서 발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삶의 가까이에서, 공동체의 감성이 춤으로 화한 민속무용

 

궁중무용의 정제된 선과 달리 사람들이 살면서 삶 가까이에서 만들고 추던 춤인 민속무용에는 사람의 감정과 공동체의 감성이 녹아있다. 민속무용 중에서도 ‘살풀이춤’이나 ‘승무’가 제례적 의미와 한풀이의 성격을 갖는다면 이번 <정심지무>에서 선보인 춤들은 대부분 풍류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노니는’ 분위기의 경쾌함이 있다. 특히 풀로 만든 모자인 초립을 쓰고 추는 ‘초립동’은 소년의 맑고 쾌활한 면모가 매력적인 춤이다. 초립은 관례를 마친 소년이 끄는 모자이다. 어른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소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풋내기 어른이라 실질적으로는 사모관대를 쓰고 결혼식을 올린 경우 진정한 어른으로서 대접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립동’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 사이에서 추는 춤이며 그만큼 순수함과 설렘이 드러나는 춤이기도 하다.   

7d24d06d51e19.jpg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월 카시오페아무용단 <정심지무(靜心之舞)>  Ⓒ 양평문화재단


성인 남성이 추는 춤인 ‘한량무’와 비교해 보면 그 두 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풍류와 멋을 아는 한량의 움직임은 초립동보다 느긋하고 원숙하며 ‘뭘 좀 아는 사람’의 여유와 능청스러움이 있다. 춤사위와 호흡 역시 초립동이 생기보다는 여유롭게 흘리는 맛이 있다. 한량은 공부를 했지만 벼슬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 글과 풍류와 예술을 알고 그 안에서 놀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자로 등극한 갓의 매력도 ‘한량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양반 남성의 상징인 갓은 이 춤에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시선과 움직임의 처리에 있어서 멋을 만들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갓과 부채, 그리고 도포자락은 ‘한량무’가 갖고 있는 품위와 풍류를 결정짓는다.  


똑같이 갓을 쓰고 나오지만 ‘동래학춤’은 선비가 아니라 선비처럼 고고한 학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부산 동래 지역에서 전승된 이 춤은 학의 움직임을 가져와서 춤으로 표현했는데 평상시 선비들이 입는 도포보다 긴 소매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학의 날개처럼 보이고, 곧게 뻗어서 서는 다리의 움직임은 학의 다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춤은 단순히 학의 모양새를 본떴다기보다는 선비의 품격을 드러내고, 속세가 아닌 학이 사는 곳의 환상적 이미지를 연출해낸다. 학이 조선시대 선비의 고고한 마음을 대변하는 동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외에 이번 <정심지무>에서는 우리 춤에서 가장 인기 레퍼토리인 부채춤도 빼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춤들이 민속적 정취를 담고 있다면 부채춤은 전통 춤사위를 바탕으로 시각적으로 화려한 색채와 움직임을 더해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꽃을 표현한 부채는 그 자체로 무대예술의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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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월 카시오페아무용단 <정심지무(靜心之舞)>  Ⓒ 양평문화재단


세상과 노닐며 우리가 되어 어울린다

 

<정심지무>의 마지막 무대는 우리 민족의 흥이 담은 진쇠춤과 소고춤으로 장식했다. 진쇠는 꽹과리나 꽹과리를 치는 사람을 뜻하고, 소고는 작은 북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 춤은 모두 농악과 풍물 계열의 민속무용으로 마을 공동체의 흥을 돋우고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궁중무용의 무대가 궁궐이었다면, 민속무용의 무대는 마을 잔치, 굿판, 풍물판이었다. 삶의 현장이 무대였기 때문에 격식보다는 사람의 정서와 감정이 묻어있고,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기운이 담겨있다.

 

전통은 새롭게 태어난 세대의 몸에 그대로 새겨넣어져 또다시 시간을 건너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진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시간 사이에 다리를 놓아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이다. <정심지무>는 우리 안에 깊게 내재되어 있는 민족적 감성, 흥과 정(情)을 불러일으켰다. 춤과 노래와 음악이 그 몸에 춤과 노래와 음악 이상의 것으로 남는다. 얼이라고 부르는 것, 혼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들이 그 춤 안에 흐른다. 그것이 우리 춤이라는 끈으로 형상화되어 우리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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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 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 세종도서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