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루첸트 앙상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벽난로의 불을 떠올리며 듣는 겨울의 음악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트리 위에 반짝이는 큰 별, 선물을 기다리는 커다란 양말, 갖고 싶은 선물, 하얀 눈, 교회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벽난로의 온기. 현실이 냉혹해도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 안에 서 기꺼이 아름다운 가상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것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종교적 색채에 기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크리스마스에는 소원이 이뤄지기를, 사랑이 넘치기를 기대하는 우리 의 마음이 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탄생도 결국 신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 이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는 전쟁도 잠시 멈추는 힘을 갖고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 병사들은 상부의 명령 없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캐럴을 부르며 그날 하루 휴전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은 전쟁을 넘어선 인간의 사랑을 보인 상징적인 사 건으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에 갖는 기대와 이미지에 음악은 소리로 그 힘을 더한다. 개인적 으로 겨울에는 캐롤을 잔뜩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다. 캐롤과 성가곡, 재즈와 팝송, 장 르를 넘어서서 크리스마스가 갖고 있는 사랑과 평화의 의미는 음악 안에 실려 전세계에 울려 퍼진다. 그 음악이 양평에도 찾아왔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시대를 넘어서는 감성, 크리스마스 음악
‘2025 별빛 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공연은 루첸트 앙상블이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음악들 과 함께 했다. 루첸트 앙상블은 4명의 현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돼 있다. 첼로, 비올라, 바이올 린 두 대. 타악기나 건반악기 없이 오케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4가지 현악기들이 크리스마스 의 화음을 만들어낸 공연이었다. 공연 도중, 각각의 악기가 갖는 역할을 소개하고 소리를 들 려준 덕분에 클래식 악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각 악기의 음색과 특성에 다가가고, 각 소리들이 어떻게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이 앙 상블의 매력을 느끼고,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공연에 생기를 넣는 순간이 되었다. 가벼운 입담 이 다정한 순간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묵직하고 진지한 접근보다는 ‘부드럽고 다정하게’를 느낀 시간이었다. 무대는 존 프랜시스 웨이드가 작사·작곡한 <오 컴, 올 예 페이스풀(O Come, All Ye Faithful)>을 첫 음 악으로 문을 열었다. 보통 ‘참 반가운 성도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이 곡은 구세주의 탄생 을 기뻐하며 함께 경배하자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찬송가이다. 그래서 성가대가 부를 경우 경건함이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 곡을 통해 파이어사이드, ‘벽난 로 옆에서’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이런 성가곡 외에 크리스마스 시즌 에 듣게 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구성돼 있었다.
벽난로 옆에서 듣는 크리스마스 음악의 이미지는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으로 극대화될 것이 다. 연신 ‘눈 내리게 해주세요’를 외치는 <렛 잇 스노우(Let It Snow)>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과 어울리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했다. 이 곡은 1945년에 나왔다. 이 곡을 작사한 새 미 칸(Sammy Cahn, 1913~1993)은 20대 청년, 작곡한 줄 스타인(Jule Styne, 1905~1994)은 이제 마흔에 접어들 시점에 나온 노래이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노래를 한 세기가 다 채워지 도록 똑같이 크리스마스에 눈을 연상하거나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듣고 있다. 최근에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가 부른 노래로 종종 듣게 되는데 그 목소리 안 에서 덩달아 눈이 오게 해달라고 들떠서 소리친다.
어디 이 노래 뿐이랴. 왬!(Wham!)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1963~2016)이 작곡한 1984년 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70~)가 부른 1994년 곡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는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인기있는 곡으로 꼽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곡들에 대한 기록이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뜨겁다.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는 미국 빌 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서 100주째 1위를 기록하면서 67년 빌보드 역사상 최장기간 1위 기 록을 경신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핫 100’에서는 2위에 올랐지만, ‘글로벌 200’ 차트에 서는 1위를 차지했다. 하나는 지난 사랑의 슬픔을, 다른 하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설렘이 가득한, 상반된 가사를 갖고 있는 노래지만 크리스마스 감성 안에서 하나가 되고, 시대를 넘 어 모두를 묶는 노래로 남았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마치 영화처럼
이번 공연에서는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연상시키는 영화음악들을 선보인 것도 특징이다. 크리 스마스는 사랑을 떠올리는 날이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인류애까지, 사랑 안 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된다.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작곡한 영 화 <시네마 천국>의 OST 중 <러브 테마(Love Theme)>는 연인의 아름다운 키스 장면을 담 고 있는 마지막 장면에 흘렀지만 우리가 그 장면에서 느끼는 건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다. 영 사 기사 알프레도와 소년 토토의 우정, 영화에 대한 사랑,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그 음악 안에 녹아있다. <겨울왕국>의 OST로 유명한 <렛 잇 고(Let It Go)>는 엘사가 자신의 숨 겨온 마법의 힘이 발각되면서 이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마법을 쓸 거라고 외치 며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성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만, 그 노래는 오히려 자신을 꺼내달라 는 호소나 다름없다. 꽁꽁 얼은 마음과 겨울의 성에서 나오고 싶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엘사 자신이었을 것이다. 결국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푼 힘은 동생 안나의 사랑이었다.
이어서 두 곡의 영화음악이 연주됐다. 사카모토 류이치(坂本 龍一, 1952~2023)의 <메리 크 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곡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인도네시아의 일본 군 진영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권력과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다루지만 결국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에 일본 대중문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화였기 때문에 41년이 지난 2024년 개봉된 영화이기도 하 다. 이 영화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만 맡은 게 아니라 직접 배우로 등장하는 것도 눈여 겨 볼 부분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인류의 보편 적 감성은 시대를 관통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90~1935)이 1935년에 발표한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는 1992년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장면에 등장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노래 제목인 ‘포르 우나 카베사’는 스페인어로 ‘머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 을 갖고 있다. 경마장에서 말의 머리 하나 차이로 패배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도 밀고 당기 다가 미묘한 차이로 맺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이별과 거절 후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음 을 이야기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와 이 곡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주인공 찰리가 프랭크 중령(알 파치노)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가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갈 경비 를 모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도나 역의 가브리엘 앤워는 탱고를 추는 딱 한 장면만 등장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인의 향기>의 명장면이자 이 영화에서 전환점을 만든 주요인물로 기억 된다. 영화 속에서 춤을 추다가 실수할까봐 두렵고, 스텝이 꼬이면 어쩌느냐며 춤추기를 망설 이는 도나에게 프랭크 중령이 건넨 ‘스텝이 꼬이면 그것이 탱고’라는 말은 어쩐지 깊은 용기 를 준다. 꼬이고 엉켜도 포용되는 것, 그래도 나아가는 것,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주는 의미와 도 맞닿는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사랑, 희망, 추억, 크리스마스 안에 담긴 그 단어들
공연의 후반부를 장식한 네 곡은 이렇다. 1951년 발매된 곡 <잇츠 비기닝 투 룩 어 랏 라이 크 크리스마스(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1944년 처음 공개됐다가 이후 1946년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1965)에 의해 재즈로 재탄생한 <더 크리스마스 송(The Christmas Song)>은 모두 재즈풍의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유명하다. <윈터 원더랜드 (Winter Wonderland)>는 리처드 버나드 스미스(Richard B. Smith, 1901~1935)가 자신의 고향 펜실베이니아의 눈 덮인 공원을 떠올리며 쓴 시에 펠릭스 버나드(Felix Bernard, 1897~1944)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병을 앓고 병원 생활을 하다가 33세의 나이에 사망한 리 처드 버나드 스미스가 고향과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사 안에서 느껴지는 곡이다. 휴 마틴(Hugh Martin, 1914~2011)이 작곡한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는 1944년 뮤지컬 <밋 미 인 세인트 루이스(Meet Me in St. Louis)> 안에 들어있는 노래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겨울은 어떻게 따뜻해질까. 옷깃을 저미게 만드는 추위는 무엇으로 녹일 수 있을까. 음악이 꽤 훈훈한 온기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음악 안으로 벽난로 옆에서 책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 더없는 평화가 내려앉는 시간이 그려진다. 이번 공연에서 <포르 우나 카베 사>는 앙코르로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말 머리 하나로 승패가 나눠지고, 아찔 한 긴장감 위에 곡예를 하듯 서 있어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건 사랑과 희망이 아직도 있다는 의미이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건 추운 계절 안에서도 그걸 다시 읊조리며 인류가 여전히 그 힘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절망 안에서 다 시 살아나는 기적에서 시작됐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 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 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루첸트 앙상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벽난로의 불을 떠올리며 듣는 겨울의 음악
이단비/ 공연 대본작가·무용전문작가
트리 위에 반짝이는 큰 별, 선물을 기다리는 커다란 양말, 갖고 싶은 선물, 하얀 눈, 교회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벽난로의 온기. 현실이 냉혹해도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 안에 서 기꺼이 아름다운 가상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것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종교적 색채에 기대지 않더라도 누구나 크리스마스에는 소원이 이뤄지기를, 사랑이 넘치기를 기대하는 우리 의 마음이 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탄생도 결국 신이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 이었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는 전쟁도 잠시 멈추는 힘을 갖고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영국군 병사들은 상부의 명령 없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캐럴을 부르며 그날 하루 휴전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은 전쟁을 넘어선 인간의 사랑을 보인 상징적인 사 건으로 남아있다. 크리스마스에 갖는 기대와 이미지에 음악은 소리로 그 힘을 더한다. 개인적 으로 겨울에는 캐롤을 잔뜩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다. 캐롤과 성가곡, 재즈와 팝송, 장 르를 넘어서서 크리스마스가 갖고 있는 사랑과 평화의 의미는 음악 안에 실려 전세계에 울려 퍼진다. 그 음악이 양평에도 찾아왔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시대를 넘어서는 감성, 크리스마스 음악
‘2025 별빛 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공연은 루첸트 앙상블이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음악들 과 함께 했다. 루첸트 앙상블은 4명의 현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돼 있다. 첼로, 비올라, 바이올 린 두 대. 타악기나 건반악기 없이 오케스트라에서 중심이 되는 4가지 현악기들이 크리스마스 의 화음을 만들어낸 공연이었다. 공연 도중, 각각의 악기가 갖는 역할을 소개하고 소리를 들 려준 덕분에 클래식 악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각 악기의 음색과 특성에 다가가고, 각 소리들이 어떻게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이 앙 상블의 매력을 느끼고,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공연에 생기를 넣는 순간이 되었다. 가벼운 입담 이 다정한 순간을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묵직하고 진지한 접근보다는 ‘부드럽고 다정하게’를 느낀 시간이었다. 무대는 존 프랜시스 웨이드가 작사·작곡한 <오 컴, 올 예 페이스풀(O Come, All Ye Faithful)>을 첫 음 악으로 문을 열었다. 보통 ‘참 반가운 성도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이 곡은 구세주의 탄생 을 기뻐하며 함께 경배하자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찬송가이다. 그래서 성가대가 부를 경우 경건함이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 곡을 통해 파이어사이드, ‘벽난 로 옆에서’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이런 성가곡 외에 크리스마스 시즌 에 듣게 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구성돼 있었다.
벽난로 옆에서 듣는 크리스마스 음악의 이미지는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으로 극대화될 것이 다. 연신 ‘눈 내리게 해주세요’를 외치는 <렛 잇 스노우(Let It Snow)>는 이번 공연의 타이틀과 어울리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했다. 이 곡은 1945년에 나왔다. 이 곡을 작사한 새 미 칸(Sammy Cahn, 1913~1993)은 20대 청년, 작곡한 줄 스타인(Jule Styne, 1905~1994)은 이제 마흔에 접어들 시점에 나온 노래이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노래를 한 세기가 다 채워지 도록 똑같이 크리스마스에 눈을 연상하거나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듣고 있다. 최근에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가 부른 노래로 종종 듣게 되는데 그 목소리 안 에서 덩달아 눈이 오게 해달라고 들떠서 소리친다.
어디 이 노래 뿐이랴. 왬!(Wham!)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1963~2016)이 작곡한 1984년 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70~)가 부른 1994년 곡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는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인기있는 곡으로 꼽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곡들에 대한 기록이 뉴스로 보도될 정도로 뜨겁다.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는 미국 빌 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서 100주째 1위를 기록하면서 67년 빌보드 역사상 최장기간 1위 기 록을 경신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핫 100’에서는 2위에 올랐지만, ‘글로벌 200’ 차트에 서는 1위를 차지했다. 하나는 지난 사랑의 슬픔을, 다른 하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설렘이 가득한, 상반된 가사를 갖고 있는 노래지만 크리스마스 감성 안에서 하나가 되고, 시대를 넘 어 모두를 묶는 노래로 남았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마치 영화처럼
이번 공연에서는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연상시키는 영화음악들을 선보인 것도 특징이다. 크리 스마스는 사랑을 떠올리는 날이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인류애까지, 사랑 안 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된다.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작곡한 영 화 <시네마 천국>의 OST 중 <러브 테마(Love Theme)>는 연인의 아름다운 키스 장면을 담 고 있는 마지막 장면에 흘렀지만 우리가 그 장면에서 느끼는 건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다. 영 사 기사 알프레도와 소년 토토의 우정, 영화에 대한 사랑, 지나간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그 음악 안에 녹아있다. <겨울왕국>의 OST로 유명한 <렛 잇 고(Let It Go)>는 엘사가 자신의 숨 겨온 마법의 힘이 발각되면서 이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마법을 쓸 거라고 외치 며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성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만, 그 노래는 오히려 자신을 꺼내달라 는 호소나 다름없다. 꽁꽁 얼은 마음과 겨울의 성에서 나오고 싶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엘사 자신이었을 것이다. 결국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푼 힘은 동생 안나의 사랑이었다.
이어서 두 곡의 영화음악이 연주됐다. 사카모토 류이치(坂本 龍一, 1952~2023)의 <메리 크 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곡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인도네시아의 일본 군 진영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권력과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다루지만 결국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에 일본 대중문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화였기 때문에 41년이 지난 2024년 개봉된 영화이기도 하 다. 이 영화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만 맡은 게 아니라 직접 배우로 등장하는 것도 눈여 겨 볼 부분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인류의 보편 적 감성은 시대를 관통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90~1935)이 1935년에 발표한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는 1992년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장면에 등장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노래 제목인 ‘포르 우나 카베사’는 스페인어로 ‘머리 하나 차이로’라는 뜻 을 갖고 있다. 경마장에서 말의 머리 하나 차이로 패배하는 것처럼, 사랑의 감정도 밀고 당기 다가 미묘한 차이로 맺어지지 않기도 하지만 이별과 거절 후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음 을 이야기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와 이 곡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주인공 찰리가 프랭크 중령(알 파치노)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가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갈 경비 를 모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도나 역의 가브리엘 앤워는 탱고를 추는 딱 한 장면만 등장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인의 향기>의 명장면이자 이 영화에서 전환점을 만든 주요인물로 기억 된다. 영화 속에서 춤을 추다가 실수할까봐 두렵고, 스텝이 꼬이면 어쩌느냐며 춤추기를 망설 이는 도나에게 프랭크 중령이 건넨 ‘스텝이 꼬이면 그것이 탱고’라는 말은 어쩐지 깊은 용기 를 준다. 꼬이고 엉켜도 포용되는 것, 그래도 나아가는 것, 그것은 크리스마스가 주는 의미와 도 맞닿는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사랑, 희망, 추억, 크리스마스 안에 담긴 그 단어들
공연의 후반부를 장식한 네 곡은 이렇다. 1951년 발매된 곡 <잇츠 비기닝 투 룩 어 랏 라이 크 크리스마스(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1944년 처음 공개됐다가 이후 1946년 냇 킹 콜(Nat King Cole, 1919~1965)에 의해 재즈로 재탄생한 <더 크리스마스 송(The Christmas Song)>은 모두 재즈풍의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유명하다. <윈터 원더랜드 (Winter Wonderland)>는 리처드 버나드 스미스(Richard B. Smith, 1901~1935)가 자신의 고향 펜실베이니아의 눈 덮인 공원을 떠올리며 쓴 시에 펠릭스 버나드(Felix Bernard, 1897~1944)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병을 앓고 병원 생활을 하다가 33세의 나이에 사망한 리 처드 버나드 스미스가 고향과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사 안에서 느껴지는 곡이다. 휴 마틴(Hugh Martin, 1914~2011)이 작곡한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는 1944년 뮤지컬 <밋 미 인 세인트 루이스(Meet Me in St. Louis)> 안에 들어있는 노래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겨울은 어떻게 따뜻해질까. 옷깃을 저미게 만드는 추위는 무엇으로 녹일 수 있을까. 음악이 꽤 훈훈한 온기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음악 안으로 벽난로 옆에서 책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 더없는 평화가 내려앉는 시간이 그려진다. 이번 공연에서 <포르 우나 카베 사>는 앙코르로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이 말 머리 하나로 승패가 나눠지고, 아찔 한 긴장감 위에 곡예를 하듯 서 있어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건 사랑과 희망이 아직도 있다는 의미이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건 추운 계절 안에서도 그걸 다시 읊조리며 인류가 여전히 그 힘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절망 안에서 다 시 살아나는 기적에서 시작됐다.
2025 별빛물빛 콘서트 in 양평 12월 <크리스마스 파이어사이드(Christmas Fireside)> Ⓒ 양평문화재단
이단비
시사·교양·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예술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발레에 빠져 다양한 춤과 발레를 배워 오면서 예술 토크와 강연 진행, 발레와 현대무용 작품 창작 작업을 통해 무용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춤과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하고, 예술책을 집필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잇는다. 최근 출간한 <발레,무도에의 권유>가 교보문고 뉴앤핫, 세종도서로 선정됐다.